효종 북벌정책 계획
명나라가 저물어가고 청나라가 등장할 당시,
광해군이 왕권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요즘 영화를 통해서
재조명이 되는것은 폭군만이 아니고 대동법과 같은 민생의 정책을
펼치고 군사를 정비할 뿐아니라 실리적인 외교를한 유능한 왕이라는
것인데요.
이후 인조반정으로 인조가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권을 차지하게됩니다.
인조는 광해군이 형제를 죽이고 임진왜란때 나라를 도와준 명나라를
도우지 않았다는 명분을 내세웠는데요.
이로인해 친명배금(청)을 정책을 펼쳤습니다. 형제를 죽인 광해군이라는
명분을 가졌기에 광해군을 죽이지 않고 강화도로 유배를 보내게 되죠.
그러나 국제적인 정세는 광해군의 해안처럼 변화가 이르렀으니,
즉, 후금(청)이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중국에 등장하게 되는것이죠.
후금과 화친한 광해군대신 <친명배금>을 주장한 인조가 왕을 차지하고 있느니
청나라 입장에서는 좋아보이지 않았을것입니다. 물론 왕으로 인정하지 않으려했죠.
그래서 2차례 침공을합니다. 막대한 피해를 입게되죠.
이로인해 인조는 3번절하고 머리를 땅에 박치를 하는 굴욕을 당하고
인조의 2 아들은 인질로 끌려가게됩니다.
소현세자는 중국의 문물을 경험하게 되면서 이를 받아 들여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로인해 청나라는 소현세자를 신뢰하게 되는데요. 인조와 측근들은 소현세자를
모함합니다.
이때 같이 끌려간 동생 효종은 청나라를 칠 북벌정책을 생각하게되죠.
포로기간이 지나고 귀국하게 되는데 소현세자는 2달만에 죽게됩니다.
또환 소현세자의 세 아들들도 제주도로 유배를 가게되죠.
광해군도한 강화도에 있다가 제주도로 유배를가는데 얼마되지 않아 죽습니다.
당시 제주도는 사람이 살기 어려운 환경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소현세자의 세째 아들은 아직 살아있지만,
인조는 다음왕으로 효종을 세우게 됩니다. 효종하면 생각나는 북벌!
그러나 청나라가 러시아제국을 정복하자고 요청할 때 2차례 지원을합니다.
과연 북벌에 관한 강한 마음이 있었는지 의문이 들게 하는데요.
당시 효종은 왕의 정통성 문제도 있었습니다. 아버지 인조 또한
정통성이 없는 왕이라는 말을 들었는데요. 자신 또한 차남으로 마찬가지 였죠.
효종의 북벌정책 계획의 일환으로 먼저는 친청세력을 몰아내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어영청의 병사를 3배이상 늘렸는데요. 약 2만여명으로 늘렸습니다.
그리고 수도방위 사령부 강화와 왕의 친위병을 기병대로 바꿨습니다.
그러나 1659년 효불혹의 나이즘에 종기로 인해 죽게된 효종은 숙원이었던
북벌을 시행하지는 못하게 됩니다.